몇 년 전 이맘때 온가족이 발리로 향했다.

 

늘 사진촬영을 위해 전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지만 이렇게 온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간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와 동생네 가족 그리고 막내 동생과 우리 가족까지 총 9명의 인원이 발리로 향했다. 쌀쌀해져 가는 우리나라 날씨와 반대로 따뜻하다 못해 더운 발리의 날씨는 오랜만에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당시 내 아이들은 3살, 6살이었다. 늘 아이들에게 잘해주지도 못한 아빠이면서도 아이들에겐 어떻게 하면 잘(well)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과 보다 좀 더 잘(rich)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살기를 나도 모르게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여행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리조트 안에서의 화려한 모습과는 반대로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카메라를 들고 허름한 골목길을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 그들은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처럼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신나게 깔깔대며 흙을 만지고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 또래의 아이가 있어서일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눈망울로 해맑게 웃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과 혼자 조금 동떨어져서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조금 윗 또래의 여자아이…. 그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10대 시절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장소도 사라지고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다가서서 말을 걸면 불신의 눈빛으로 경계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홀로 바라보다가 슬며시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그 세 명의 아이들을 향해 멀찌감치에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늘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포토 프린터로 아이들의 사진을 뽑은 다음 그 아이들을 불러서 인화한 사진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자 안 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이 더 커지면서 너무도 신기해하는 아이들…. 서로 자기도 뽑아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개인당 한 장씩 인화를 해주었다. 그러자 먼발치에서 수줍게 바라보던 소녀 역시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그 아이에게도 사진 한 장을 선물로 주었다.

 그렇게 사진 한 장으로 아이들과 부쩍 가까워졌고, 그 아이들과 나의 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손짓 발짓하며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아이들은 나에게서 사진을 더 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 뒤로 사진 몇 장을 더 찍어서 뽑아주고 멀리서 들리는 우리 아이들의 아빠를 찾는 목소리에 그 아이들을 뒤로하고 돌아서야 했다. 그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고 있던 생각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하게 산다는건 무엇일까?

 

과연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학원과 학교, 집을 오가면서 셔틀버스 안에서 수다 떠는 게 친구들과 노는 것의 전부인 아이들은 행복할까? 깨끗한 환경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조금 비위생적이더라도 두 발로 땅을 밟고 뛰어다니면서 땀 흘리고 서로의 체취를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게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우리나라 아이들에게서도 사진 속 아이들의 미소처럼 순수하고 맑은 행복한 눈빛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믿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믿지 말라고 강요하고 세상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는 세상…, 그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세상에 대한 불신 대신 사랑과 믿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도록 나부터 노력해야겠다.

글. 사진/ 이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