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개봉 당시 파격적인 정사장면으로 논란이 됐던 영화 <색, 계>.
개인적으로 적나라한 애정신보다 더욱 긴장이 고조된 장면이 있었으니, 이 대장(양조위)이 왕치아즈(탕웨이)에게 핑크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한 순간이다. 그때부터 나의 초점은 반지로 바뀌었고 이를 통해 색과 계의 메시지를 탐구하려 했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이자 맹렬한 감정에 의해서 지배되는 색(色),
그것에 대한 경계이자 이성적 통제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계(戒).
절정의 희열과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경계를 허물었다면 결국 색이 계를 무너뜨린 것인가? 나는 사실 이 반지 장면이 ‘김중배와 심순애’의 뻔한 스토리가 아니기를 바랐다.
물론 케이스를 열어 반지를 보여주었을 때 가슴이 쿵쿵거린 것은 사실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핑크색 다이아몬드라니…. 게다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난 보석 따위엔 관심 없소. 다만 그걸 낀 당신의 손이 보고 싶소.”
영화관은 순간 술렁거렸다. 더구나 누가 훔쳐갈까 두렵다며 반지를 빼려는 왕치아즈에게 자신이 지켜주겠다며 쐐기를 박는 이 대장. 이렇듯 ‘계’를 확실히 무너뜨리기 위한 장치로 다이아몬드는 너무 적절했다. 결국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그를 구출시킨 왕치아즈는 자결하기 위해 준비한 독약을 들고 고민하는데 이 장면에서 반지와 독약이 화면에 같이 잡힌다. 고뇌와 번민의 순간 감독은 금기가 어떻게 깨어지게 되는지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중요한 상징이 된 6.1캐럿의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는 이안 감독이 까르띠에(Cartier)에 특별 주문한 것이다. 까르띠에는 1930년대 상해의 배경적 고증을 거쳐 커다란 핑크 다이아몬드 주변을 두 줄의 다이아몬드로 둘러싼 반지로 완성하였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 중국어로 제목 ‘색 계’와 ‘유색 반지’는 동음이의어라고 한다. 애초에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니 감독의 세밀함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핑크 다이아몬드는 100만 캐럿 중 1캐럿 정도가 산출되는 아주 귀한 존재이다. 화이트, 블랙, 브라운, 옐로 다이아몬드에 비해 생산량이 극히 낮고 가용할 수 있는 수량은 점점 감소하는 상황이다. 지난 20년 간 핑크 다이아몬드의 가장 큰 공급원은 호주의 아가일(Argyle) 광산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핑크 다이아몬드는 늘 소량이며 사실상 매장량 자체가 고갈되는 중이다. 이 외에도 진한 핑크색은 브라질에서, 밝은 핑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그리고 자줏빛은 시베리아에서 발견된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소량의 핑크 다이아몬드가 생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말 희소성이 높으며 설상가상 경영상의 문제로 브라질에서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감질나는 수량만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 공급원이 점점 불안해지는 상황이니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화사하고 우아한 색감으로 사람들의 소유욕을 자극하고, 적은 공급량은 희소성을 배가한다. 여성스러움, 신비로움, 낭만, 그리고 부의 집약체, 럭셔리의 상징인 핑크 다이아몬드. 1캐럿짜리가 1백만 달러에 육박하기도 하고 주요 경매마다 재력으로 무장한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는 보석이다.
원작인 동명의 소설에서는 미녀 정보원 정핑루가 딩모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달라고 졸라 상하이 제스필드로 동쪽 시베리아 잡화공사로 간다.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오버코트를 원했는데 영화에서는 핑크 다이아몬드로 바뀌었다. 물론 그 자신이 몰래 준비한 선물이라는 점도 원작과는 다르다. 감독이 생각하는 물질적인 소유의 본능을 상징하기에 오버코트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당신을 아주 특별한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보석상이 전하는 이 대사, 그리고 그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매개체로서의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
동시에 비극의 원천이었지만 두 사람은 이를 통해 마음을 울리는 떨림을 경험한다. 그녀는 핑크 다이아몬드를 통해 그에 대한 사랑이 거짓이었음을, 아니 진심이었음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특별한 분’을 향한 그의 마음은 희소가치가 높은 핑크색으로 투영되었다. 화사한 핑크빛을 통해 무채색의 시린 여운을 안겨준 이안 감독, 그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낸다.
교양/종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