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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5년 11월

제목

청춘에 날개를 달아주는 옷장 - 2030하이킥! / 한만일, 열린옷장 대표

2012년 늦가을 직장 생활을 하던 평범한 사람 세 명이 좋은 일 한번 해보자고 뭉쳤다. 잘 입지 않는 정장을 기증받아 면접을 앞둔 청년 구직자들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여를 해주는 서비스를 구상한 것이다. 이른바 ‘열린옷장’. 형편이 넉넉지 않아 면접용 정장을 살 수 없었던 우리의 기억이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냈다.

우연히 한 단체에서 소셜 디자인 스쿨(Social Design School)이라는 수업을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 사회를 보다 멋지게 디자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수업이었다. 열린옷장 초기 멤버 셋은 그 자리에서 만났다. 죽이 참 잘 맞았던 우리는 수업이 있는 날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중 한 명이 청년 취업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꿈꾸고 도전하고 모험할 시간도 모자랄 청춘들이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보내는 현실도 안타까운데 취업 준비에 드는 돈도 너무 많지 않니?”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 입장에서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우리는 불현듯 ‘옷장’을 떠올렸다. 직장 생활을 한 지 몇 년 지나다 보니 옷장 안에 안 입는 옷들이 하나둘 늘었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안 입는 정장이 생각난 것이다. 분명 처음 살 땐 손을 덜덜 떨며 비싸게 주고 샀건만 유행이 지나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더 좋은 걸 사게 되어서 옷장 안에 잠들어 있는 옷이 참 많았다. 면접을 위해 정장을 새로 사야만 하는 청년 구직자들에게는 이 옷들이 정말 소중할 것 같았다.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니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정장을 기증해줄 분들이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대여하는 사람이 있긴 할까 하는 고민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5천 원짜리 중고 행거 2개와 열정만으로 시작한 우리에게 디자이너,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먼저 선의로 다가왔다. 그분들은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우리 아이디어만을 믿고 힘을 보태주었다. 특히 옷과 함께 편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보내주신 택배 꾸러미들이 기억에 참 많이 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열린옷장 웹사이트를 열게 되었다. 사람들이 실망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문을 연 지 2주 만에 남성 정장 한 벌을 뺀 모든 옷이 대여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옷을 빌려간 학생들의 감사 편지도 속속 도착했다. 정장 구입비가 부담되어 고민이었는데 저렴한 비용으로 정장을 빌려 당당하게 면접을 보았다는 인사부터, 열린옷장 덕분에 합격했다며 자기도 후배를 위해 첫 월급을 타면 한 벌 구입하여 기증하겠다는 사연, 실무평가에서 열린옷장 정장을 입고 1등을 거머쥐었다는 사연까지.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그 중에서도 한 기증자의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 인천공항에서 VIP 의전 경호 업무를 하던 건장한 체격의 남성분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정장을 기증하시면서 자신 대신 다른 사람이 꿈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남겨주신 사연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아들과 함께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정장을 살 돈이 없어 고민하다가 열린옷장을 발견하고 찾아주신 가족도 있었다. 어머니께서 옷을 입고 난 뒤에 정말 사진을 잘 찍었다며 마지막까지 아들의 환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사연을 건네받고는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열린옷장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10명 정도에 불과하던 기증자는 1,700명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덕분에 3년이란 시간동안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힘찬 날개를 달아줄 수 있었다. 아직은 조금이지만, 발생한 수익으로 의류를 기증해주신 분들의 마음과 함께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재활원에서 긴 시간 재활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단 하루라도 최고의 모습으로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리마인드 웨딩을 지원하거나, 늦게 시작한 공부로 야학을 졸업할 어머님과 아버님들께 멋진 졸업 의상을 지원해드리고도 싶다.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에게는 더 힘내서 ‘파이팅’하라고 잘 맞는 의류를 제공해 드리고 싶다.

물론 아직은 다양한 정장을 구비하지 못했고 제공할 수 있는 의류가 한정적이지만 차근차근 해결책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문제에는 늘 답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분들의 사랑이 더해질수록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껴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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