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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공연

구분  문화/예술/공연
정간물명   월간에세이
게재월   2015년 11월
제목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 On the Road / 케이채, 사진가



길을 잃었다. 분명히 화살표대로 따라왔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늦은 밤의 등산이라 더 길을 알아보기 어려웠던 걸까? 아니, 사실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는 알 것 같았다.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화살표는 왼쪽 길을 향해 ‘아담스 피크로 가는 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사람들은 오른쪽 길로 가고 있었다. 어느 길이 맞느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은 영어를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현지인들을 따라갈까 싶다가도, 관광객들을 위한 다른 루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분명히 표지판은 왼쪽을 가리키고 있었고, 영어로 적힌 그 화살표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위세 당당하게 여기까지 걸어 올라왔는데 더는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었을 줄이야. 아담스 피크, 이 녀석이 뭐라고 이 늦은 밤에 나를 산속에서 헤매게 한 것일까?

아담스 피크, 그래 그게 이유였다. 밤은 고사하고 낮에도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밤중에 등산을 하는 이유 말이다. 아담이 천국에서 추방되었을 때 처음 발을 내디딘 땅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지만 스리랑카 사람들에겐 스리 파다(Sri Pada)로 더 알려졌다. 불교에서는 이곳을 부처님이 지상을 떠나 극락으로 향한 장소라고 믿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종교에 무관하게 다양한 의미를 담은 성지이기에 전국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 편하게 낮에 오르지 않고 밤중에 올라가느냐고?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담스 피크 정상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소문났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광이 굉장하다는 것도 이유라고 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밤중에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상까지는 4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벽 2시에 근처 숙소를 떠나 등산을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체력도 약하고 등산에 재주가 없기에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은 자명한 일. 게다가 카메라들과 삼각대로 짐까지 무거우니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었다. 여유 있게 가고자 마음을 다잡고 자정에 숙소를 나섰는데 길을 잘못 들게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결국 허탈한 마음을 안고 나는 다시 뒤를 돌았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며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다.

그런데 길을 잃었다는 것이 나에게 오히려 길을 찾아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뒤돌아 걷는 길에 나는 이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늘 위로 저 멀리 아담스 피크 정상이 보였고, 순례자들의 길을 비춰주는 불빛이 아름답게 산을 수놓고 있었다. 그 위로는 밤하늘의 별들이 흐뭇하게 이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이전에도 이후로도 정상을 향하며 조금씩 아담스 피크의 모습을 보았지만 나무 등에 가려져 조금씩 아쉬운 그림이 되고는 했는데, 이 장소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길을 잃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장면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잘 몰라서, 완벽하지 못해서, 계획대로 되지 않아 주었기 때문에 가장 마음에 드는 아담스 피크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우연의 인연으로 발견한 그 사진을 담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올바른 길로 들어섰지만, 정상에 닿기까지는 생각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도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을 끌었던 탓에 6시간이 걸려서야 정상에 닿았고, 이미 해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정상에는 한참 늦게 도착한 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먼저 도착하여 자리를 채우고 있었기에, 도저히 제대로 해 뜨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위치로 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똑같은 풍경보다 나만이 바라본 풍경이 좋았다. 그것 또한 올라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게다가 이곳을 오르고자 했기에 길을 잃는 것도 가능했다. 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래서 카메라 하나를 벗 삼아 세상을 여행하면서 뭔가 잘못된다고 해도,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놀라거나 화내지 않는다. 분명 더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고 생각하니까. 어디론가 좋은 사진이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잘못된 내 발걸음이 내가 가장 원했던 장소로 향했던, 아담스 피크 아래 그날 밤이 그랬던 것처럼.





           [출처] 월간에세이 (2015-11)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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