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북 - 정기구독

‘처음’이란 단어엔 항상 묘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에 더 떨리고, 무섭다. 내 생방송이 딱 그랬다. 고작 10분 정도의 방송을 위해 위의 인사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봤는지 모르겠다. 밤을 꼬박 새워 대본을 달달 외워갔다. 혹시라도 실수하진 않을까 가슴을 졸이며, 그렇게 떨림 가득한 긴장 속에서 첫 생방송 데뷔를 했다.
‘아리랑국제방송국’은 해외 거주민들과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한국의 뉴스와 문화를 알리는 방송국(이하 ‘아리랑’이라 부름)이다. 바로 이곳에서 라디오와 TV를 통해 방송을 시작하게 됐는데, 2년째 메인 MC를 맡고 있는 의 녹화를 위해서라도 여전히 일주일에 3번은 아리랑으로 향한다. 나의 홈그라운드(homeground)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친정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하게만 느껴지는 이곳이, 처음에는 어찌나 아찔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던지…. 바로 옆에서 큰 북이 울리듯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파르르 떨리고 있는 내 입술을 혹시라도 누가 알아볼까봐 최대한 긴장하지 않은 ‘척’ 사력을 다해 웃어보았다. ‘초를 다투는 전쟁터’라 불리는 생방송의 세계, 그곳을 향한 나의 첫 날갯짓이 시작됐다.
무엇보다 걱정부터 앞섰다. ‘할 말이 기억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2번 카메라를 보다 3번 카메라로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야 하는데, 카메라를 못 찾으면 어떡하지?’ 한번 실수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생방송, 10분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수십 버전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상상해보고, 밤을 꼬박 새워 연습해갔다.
다음날 아침 7시,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다행히 눈감고도 대사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해갔던 덕에 큰 실수 없이 방송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일까? 다음날, 아주 고약한 감기에 걸렸다. 같이 출연을 하고 있던 선배가 “무슨 면역체계에 이상이라도 생긴 거야? 왜 그렇게 아파?” 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라도 무사히 첫발을 떼게 된 아리랑에서의 생방송 데뷔에 나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방송을 앞두고 그렇게 긴장을 하고, 심장이 뛰던 내가 지금은 매일 두 시간씩 생방송 진행을 하고 있다. 경제, 금융 시장의 흐름을 전하는 경제 전문 방송이다. TV 속에 비치는 모습은 비록 화려해 보일지라도 카메라의 ‘on-air’ 불이 켜지는 순간, 지금도 매우 떨린다. 방대한 양의 경제 뉴스를 매일 공부해야 되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외신 채널인 CNBC, Bloomberg 등도 따로 꼭 챙겨본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 둘 쌓여서 이제는 몇 시간 동안의 생방송마저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첫 발을 떼는 것은 참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두려운 시작점을 이겨내기 위해 한 가지 실천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내 자신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다. 어떠한 일이든 내가 온 열정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면 실력은 절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일상의 찰나와 순간들을 사랑하며 무슨 일이든 차근차근 도전해 나간다면 좋은 일들은 알아서 찾아오게 된다. 너무 서두를 필요도 조급해 할 필요도 없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는 꼭 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산사(山寺)를 방문하던 길에는 어느덧 싸늘한 겨울이 가시고, 새싹들이 봄이 궁금하다는 듯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마치 처음 맞이하는 봄처럼, 아직 조금은 쌀쌀한 봄바람과 함께 처음의 설렘이 가슴 가득 감동으로 차오른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모두 다르겠지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로 소신 있게 ‘첫발’을 내딛고 있는 모든 분들께 이렇게 전하고 싶다.
“여러분의 선택에 대한 믿음을 절대 잃지 마세요. 가슴이 이끄는 대로,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발을 내디뎠다면, 그 확신을 갖고 꿋꿋이 마이웨이(My way)를 걸어가세요. 해낼 수 있음도 의심치 마세요. 삶에 대한 순수한 도전과 성실함은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사이, 우리를 아주 멋진 곳으로 데려다 놓으니까요.”
당신의 첫발을 내딛는 그 길이 아름다운 꽃길이 되어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