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스토리

빛나고 아름답게

김원정, 크리에이터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더니 40년 지기 절친이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다. 좀 더 정확히는 예전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당당하고 젊어졌단 말이다. 눈빛만 봐도 뭘 생각하는지 알고 있는 오래된 친구의 평가니 믿을 수 있겠다. 사실 요즘 나는 정원을 가꾸며 시들어 가는 꽃들조차 버리지 않고 생명을 불어넣어 감성적인 소품으로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로 하루하루가 설레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10년 넘게 텃밭을 가꾸며 나오는 각종 채소를 이웃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언젠가부터 주어도 남게 되고 코로나19 이후에는 사람들도 만나기 어려워 애써 지은 농작물을 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고민 후 남편과 상의한 결과, 텃밭을 줄이고 대신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국내외 정원 관련 서적을 읽고 공부하는 한편, 꽃과 나무, 씨앗을 사서 직접 파종을 했다. 사계절이 지나고, 정원이 제법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하자 키우고 있는 꽃과 나무를 SNS로 공유하고 싶어졌다.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한 나는 인스타그램에 식물 이야기를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은 매일, 그 후부터는 이틀에 한 번꼴로 꾸준히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쌓아갔다. 나는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과 나무들, 실내에서 키우는 반려 식물을 사진과 글로 꼼꼼히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에서 아름답게 핀 꽃들을 보던 중 문득 조금 있으면 시들어서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우리도 삶의 무대에서 아쉽게 사라지듯이. 그래서 정원의 꽃들을 이용해 소품을 만들고 인스타 피드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팔로워도 늘고, 수많은 댓글과 ‘좋아요’가 달리게 되자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큰 가구보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어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기억으로 만든 거라 별반 신기할 게 없었는데, 처음 보는 팔로워들은 참신하고 창의력 있는 소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내가 오랫동안 취미로 해왔고 잘할 수 있는 코어 콘텐츠를 찾은 것이다. 그러자 나의 상상력을 키워준 꽃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의미 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의미 있는 과정을 글쓰기로 기록하고 완성했다.

우선 정원에서 키우는 라벤더를 말려 포푸리를 만들어 옷장 안이나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곳에 걸어두었더니 보기에도,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아서도 좋았다. 가지치기를 하고 난 후에 버려지는 라벤더를 모아서 말린 후 다시 백에 담아 세탁 건조기에 넣으면 다 말려 나온 세탁물에서 은은한 냄새가 난다.

장미꽃이 피기 시작하면 꽃의 여왕답게 황홀할 정도로 예쁜데 금방 지는 게 아깝다. 그래서 장미가 지기 직전에 따서 마당 한쪽에 만들어 놓은 식물 작업실에서 말렸다. 예쁘게 말려진 장미는 그야말로 전천후로 쓰인다. 석고로 방향제를 만들 때 미니 꽃다발을 만들어 데코를 하고, 깨진 화분에 빙 둘러서 붙이니 예쁜 소품 통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원 리모델링을 하면서 두 그루의 목수국을 정원 중앙과 옆집과의 경계선에 심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라임색의 꽃이 탐스럽게 피는 아름다운 꽃나무인데, 자세히 보니 꽃 모양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겼다. 그래서 목수국이 질 때쯤 잘라 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 색색이 방울도 달아서 화분에 심으면 세상에서 하나뿐인 감각 있는 장식품으로 변신하게 된다.

정원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꽃을 기억하고, 이를 이용해 나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부단히도 연습하고 연구한다. 뉴욕의 트렌디한 가든 센터를 방문해 아이디어도 얻는다. 세상에서 쉽게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작업을 통해 내가 조금씩 성장하기에 기꺼이 감수한다. 앞으로 살아갈 삶 또한 꽃에 생기를 불어넣었듯이 그냥 지게 놔두지 말고 정성을 다해 만들고 가꿔 나가려고 한다. 절정기 때의 삶도 눈부시고 좋았다. 한창때의 꽃보다 시든 꽃으로 재창조한 소품이 실용적이고 예쁘듯, 앞으로의 삶 또한 빛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으리라.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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