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첫 만남의 설렘 / 임주희, 피아니스트

만남

첫 만남의 설렘

임주희, 피아니스트

2021년 9월 8일, 나는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뉴욕을 향했다. 누구에게나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경험은 처음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학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나는 36개월부터 피아노를 하나의 ‘놀이’로 시작했다.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기에 만 21살인 지금 내가 피아노와 함께한 시간은 18년이 조금 넘는다. 나의 첫 해외 연주 여행은 9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6월, 백야의 별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 1953~)의 지휘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에는 독일 라인가우 뮤직 페스티벌에서, 10월에는 상하이에서 상하이 신포니에타 시즌 오프닝 연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많은 해외 연주를 하면서도 나 홀로 비행기를 처음 타본 것이 만 20살이 되어서라니 모두들 의아해할 수 있겠다. 내가 해외에서 연주를 할 때면 늘 부모님이 같이 동행하셨다. 부모님은 단순히 어린 나의 보호자가 아닌, 나의 연주 여행에서 조언자이자 선생님이셨다. 그 덕분에 나는 외국에서 연주를 하더라도 불편함 없이 연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유독 어려서부터 연주 기회가 많았던 나는 홈스쿨링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하루 중 가장 효율적인 시간을 피아노 연습에 할애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홈스쿨링을 위해 학원을 따로 다닐 시간적인 여유도 나에게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드디어 대학을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뉴욕에 있는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나의 선택은 단호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줄리아드 음악원과의 첫 만남에 대한 설렘을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1년 9월, 2학년이 시작되는 가을 학기에 처음으로 뉴욕행 비행기에 홀로 몸을 맡기게 되었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내가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일종의 큰 모험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음악인생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재 나는 줄리아드에서 리차드 레빈 장학금과 로라 마스키위츠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올해 6월에는 지나 바카우어 장학금 콩쿨에서 1등을 하게 되면서 4학년까지 지나 바카우어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줄리아드 협연 콩쿨에서 우승도 하게 되어 내년 2월에는 링컨센터에서 베토벤 콘체르토 5번 황제를 협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첫 만남의 설렘은 우리가 그 만남에 대해 상상할 수 있을 때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정명훈, 서울시향, 도쿄 필하모닉, 백야의 별 페스티벌, 프랑스 앙시 페스티벌, 독일 라인가우 페스티벌 등과의 첫 만남은 내가 음악적으로 성숙하는 데 밑거름이 되어 나로 하여금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인생에서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음악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마 할 말이 없을 듯하다. 나는 걸음을 걷기도 전에 피아노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악보를 보면 종종 작곡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곡을 공부할 때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수반한 첫 만남에 대한 설렘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마도 작곡가들이 작곡한 곡들을 모아보면 피아노를 위한 곡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이들은 그 많은 곡을 언제 다 배우냐고 답답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연주할 곡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첫 만남의 기쁨을 더 누릴 수 있음에 상상만으로도 즐겁기만 하다.

내 인생의 첫 만남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2000년 서울 출생. 美 줄리아드 스쿨 피아노 전공 중. 2009년 ‘야마하 리틀피아니스트 시리즈 리사이틀’로 데뷔. 지휘자 정명훈, 게르기에프 등과의 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