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4월 우주로 쏘아올려진 허블우주망원경. photo 뉴시스

지난 3월 3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l) 소속의 미국 존스홉킨스대 물리천문학과와 덴마크 코펜하겐대 닐스보어연구소 등 9개국 공동연구팀이 허블우주망원경으로 129억년 전의 항성(별)이 방출한 빛을 관측했다고 발표했다. 빅뱅(big bang·대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생기고 9억년 뒤의 별이 발한 별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129억년이 걸렸다는 의미로, 사실상 129억년 전의 우주를 관측한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약 138억년 전 태초의 특이점에서 빅뱅이 발생해 우주를 탄생시켰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우주의 새벽’이라 불리는, 빅뱅 후 약 1억년 뒤 ‘최초’로 별이 탄생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주 탄생의 시나리오는 수학적으로 계산한 초기 우주 환경 조건을 넣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어낸 결과다.
   
    

   중력이 만들어준 렌즈 효과
   
   빅뱅 이론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미국 천문학자 허블의 관측을 근거로 하고 있다. 1929년 허블은 당시 세계 최대의 망원경을 이용해 여러 은하의 스펙트럼을 관찰한 후 거리가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후퇴 속도(적색편이)가 빠르다(지구에서 멀어진다)는 거리-속도 사이의 관계(허블의 법칙)를 알아내 우주가 팽창한다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은하가 실제 스스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팽창하고 있어서 은하가 달아나는 것처럼 관측되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팽창한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것이다. 현재도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 허블의 ‘우주 팽창설’은 20세기 천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다.
   
   그리고 1990년 4월 24일, 허블의 이름을 딴 허블우주망원경이 우주로 떠났다. 주(主) 거울인 반사경 지름이 2.4m로, 대기권의 우주 공간에 보내진 최초의 우주망원경이다. 지금까지 140만건이 넘는 관측 활동을 했다. 지구궤도 610㎞를 돌며 반사경이 우주의 빛을 모아 보조거울로 반사하면 여기서 나온 빛이 맞은편 카메라로 나아가 지구에서 이미지로 바뀐다.
   
   허블우주망원경이 30년 넘게 인류에 기여한 업적은 일일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중 가장 큰 성과는 허블의 ‘우주 팽창설’을 입증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은하에서 멀리 있는 초신성이 더 빨리 멀어지고 있는 결정적 모습을 관측했다. 허블 딥필드(Deep Field)도 대표적 업적이다. 별도 은하도 없는 듯 보이는, 보름달 지름의 30분의1도 안 되는 큰곰자리의 좁고 어두운 영역에서 70억년 전의 밝은 은하부터 120억년 전의 초기은하까지 2000개 이상의 은하를 발견했다. 이후 좀 더 깊은 영역을 촬영한 ‘허블 울트라 딥필드’ 이미지에는 130억년 전에 태어난 1만개에 달하는 은하들이 찍혔다.
   
   허블우주망원경의 당초 설계 수명은 15년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수리를 받으며 32년째 활동하고 있다. 당분간은 활동을 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가운데 존스홉킨스대 등의 공동연구팀이 129억년 전의 별이 방출한 별빛을 관측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별에 ‘새벽별’ 또는 ‘떠오르는 빛’을 뜻하는 어렌델(Earendel)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초기 우주의 별 형성에 대한 비밀 등이 밝혀지길 바라는 희망이 담긴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WHL0137-LS’로, ‘WHL0137-08’이라는 거대한 은하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어렌델은 태양보다 수백만 배 밝고, 질량이 최소 50배 무거웠다.
   
   별의 관측 위치는 280억광년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별빛과 지구와의 현재 거리가 약 280억광년이라는 이야기다. 어렌델에서 별빛이 방출될 당시에는 우리은하와의 거리가 약 40억광년 떨어졌지만 우주 팽창으로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고 추정한다. 1년은 시간의 단위, 광년은 길이의 단위다. 1광년(약 9조5000억㎞)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한다. 어렌델은 지구에서 관측한 별로는 가장 먼 거리로 기록됐다. 거대한 은하단일지라도 먼 거리에 있다면 수백만 개의 별빛이 섞여 작은 얼룩처럼 보인다. 때문에 어렌델의 별빛 하나를 관측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이토록 먼 거리의 별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 비밀은 ‘중력렌즈 효과’에 있다. 이는 중력의 영향으로 빛이 휘는 현상을 말한다. 멀리서 오는 별빛이 질량이 있는 물체 주변을 지나면 중력으로 휘어져 들어오면서 물체가 더 밝아 보이는 현상이다. 이번 발견의 경우 어렌델 근처에 거대한 은하단 ‘WHL0137-08’이 있었고, 이 은하단의 강력한 중력으로 휘어진 빛이 마치 확대경 같은 역할을 해 어렌델을 길고 얇은 초승달 모양처럼 확대했다.
   
   
   빅뱅과 함께 1세대 별 연구 기대
   
   NASA에 따르면 중력렌즈 효과를 컴퓨터 시뮬레이션한 결과 어렌델의 밝기가 원래보다 1000배에서 4만배까지 커졌다. 그때 거대한 은하단 ‘WHL0137-08’의 중력렌즈 효과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성능 좋은 허블우주망원경이라도 어렌델을 포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연의 운이 따라준 어렌델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3월 30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지난해 12월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이용해 어렌델을 더 자세히 관측할 계획이다. 추가 연구를 통해 어렌델의 구성 성분, 홑별인지 쌍성인지 등의 자세한 정보를 밝혀낼 예정이다. 어렌델의 정확한 정보는 1세대 별의 형성 과정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1세대 별은 빅뱅 직후 생긴 별이고, 1세대 별의 잔해에서 생겨난 별이 2세대다. 1세대 별들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후 별의 원료를 제공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관측이 쉽지 않다.
   
   우주 형성 초기에 탄생한 별의 시기는 철(Fe)의 함유량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빅뱅으로 탄생한 초기 우주는 수소가스와 약간의 헬륨가스로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며 중력에 의해 가스가 모이면서 밀도가 높아졌다. 그러면서 가스가 붕괴했다. 수소가스가 붕괴된 이곳에서 첫 세대의 별들이 형성됐다고 한다. 따라서 우주 형성 초기에 만들어진 별들은 수소가스와 헬륨가스의 가벼운 원소로만 이뤄졌다. 지금의 철 같은 무거운 금속 원소들은 별 안에서 핵융합 반응이 발생하거나 수명을 다한 별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며 생겼다. 우주에서 나중에 생성된 별일수록 무거운 원소가 더 많이 들어있다.
   
   어렌델에 철을 비롯한 금속 성분이 없다면 아득한 옛날에 만들어졌다는 증거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찾으려는 것은 1세대 별이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관측할 어렌델의 또 다른 모습을 통해 빅뱅과 우주 시작 시점에 있었던 일들이 밝혀질 수 있을지 기대해 보자. 

[출처]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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