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공덕동에 있는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이제는 아파트 한 채를 아예 사무실로 쓰고 있다. 지하철역도 가깝고 아파트 밀집지역이라 “컴퓨터나 피아노 삽니다”라며 골목길을 지나가는 행상의 확성기 소리도 들을 수 있는 한적한 공간이다. 책 읽고 글쓰기에 딱 좋은 곳이다. 그래도 토요일 아침이면 사무실에 가지 않고 노트북을 챙겨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원고를 쓰는 일이 루틴이 되어있다. 그렇게 서너 시간 원고를 쓰고 나면 근처에 사는 옛 직장 동료를 카페로 불러내서 함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주말은 평일보다 몇 배 더 행복해 지는 셈이다.

제안을 판매하다

코로나19 전에는 토요일마다 아침 수영을 하고 난 후 같은 레인의 멤버들이 아침을 함께 했다. 할머니 회원들은 김밥, 떡이며 과일을 잔뜩 싸갖고 오셨다. 체육관 쉼터에서 배를 채우고 커피를 마시는 일이 수영보다도 더 즐거웠다. 다른 레인의 회원들도 커피나 과일을 먹으며 그 쉼터는 체육관을 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제3의 공간’이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베르크(Ray Oldenburg)는 그의 저서 ’정말 좋은 공간(The great god place)’에서 행복한 사람들에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제3의 공간(the third palce)’이라고 부른다.

스트레스 해소와 에너지 충전을 위한 제3의공간은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열과 위계질서가 없고, 수다를 떨 수 있고, 출입이 자유롭고, 나누어 먹을 음식이 있다. 올덴베르크가 제시한 정말 좋은 공간의 조건을 생각해보니 내가 수영장 회원들과 만나는 쉼터는 이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수영장 회원들 간에는 나이 차이가 좀 있지만, 위계질서가 없다. 모두가 회원일 뿐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누구나 자기 관심사로 수다를 즐길 수 있다. 가족과 직장의 이야기, 동네 소식,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 TV에서 들은 잡다한 소식 등 어떤 이야기를 펼쳐내도 상관없다. 모두가 그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올덴베르크의 말처럼 ‘제3의 공간’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럼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기만의 아지트를 구축하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제3의 공간’이라는 말보다 ‘아지트’라는 용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게 스타벅스나 체육관의 쉽터가 아지트라면 10대의 청소년들의 아지트는 PC방이 될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에겐 원래 두 개의 공간이 있다. 바로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일터(회사, 학교)이다. 행복한 공동체를 이룬 이들에겐 1, 2의 공간 외에 카페라든지 커피숍, 미용실, 서점, 바 같은 제3의 공간이 있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실제로 ‘the third place’ 즉, ‘집과 회사를 제외한 제3의 공간’을 팔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츠타야(TSUTAYA) 서점도 ‘the third place’라 불릴만한 좋은 사례다. 온라인 서점에 많은 것을 빼앗겨 오프라인 서점들이 망해가는 시점에서 유독 츠타야 서점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많은 신간을 구비해 놓고 빠르게 골라 곧장 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기존 오프라인 서점의 관점에서 벗어났다. 할인된 가격으로 빠르게 집까지 책을 배송해준다는 온라인 서점의 장점과는 또 다른 차별화를 해냈다.

츠타야는 차별화의 핵심을 사람들의 경험으로 완전히 발상을 바꿨다. 츠타야 서점의 컨셉을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增田 宗昭)는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라는 결론지었다. 그럼 그는 뭘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츠타야가 판매하는 것은 ‘제안’이다.

츠타야는 이러한 철학을 기반으로, 매장을 방문한 이들에게 다른 서점과는 완전히 다른 고객경험을 제공한다. 츠타야 서점은 책, 음반, 화장품, 옷, 식기 모두를 함께 판매한다. 츠타야 이전에는 레코드 상점과 서점은 전혀 다른 상점이었고, 두 가지 물건을 함께 취급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고객 가치를 완전히 무시한, 유통하는 쪽의 형편만 생각하는 독단적인 구별법이다. 예를 들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원작이 궁금할 수 있고, 거기에 나오는 배경음악이 담긴 앨범을 구매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츠타야 서점은 각각의 제품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그 제품이 담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기준으로 한 세트로 묶어 판매한다. 취향에 따라 책과 함께 모든 것을 추천해주는 ‘컨시어지(concierge)’와 ‘스타벅스의 바리스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차별화의 핵심을 사람들의 경험으로 완전히 발상을 바꿔서 제3의 공간을 만든 일본의 츠타야서점

일본 사람들은 보통 작은 집에 산다. TV도 재미없고 게임도 지겨워지면 집 밖으로 나와 아주 간편한 차림으로 스타벅스까지 품고 있는 츠타야 서점으로 간다.(츠타야 매장에는 꼭 스타벅스가 들어서 있다) 그곳은 ‘내 집 같다’라는 느낌을 주고 그 안에서 이 책 저 책 들춰보며 구입도 하고 앉아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모든게 경험 자체에 초점을 맞춰 구성됐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여기서 책을 구매한다.

요즘 ‘경험’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사용자나 소비자, 혹은 고객 뒤에만 붙는 단어가 아닌 그 어떤 곳에도 습관처럼 붙여 쓰는 단어가 되어 UX, CX, DX 등의 개념으로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구매하는 물건의 특징에 따라 시장에서 파는 물건을 분류한다. 자동차와 햄버거와 마사지를 다른 부류로 구분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사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물건을 분류한다. 그들은 ‘소유할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건(물질재, Buying things)’과, ‘살면서 겪는 일련의 사건이나 경험(경험재, Buying experinence)’으로 구분한다.

필자 나이대의 전통적인 소비자들은 물건을 소유하는 데 집착했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나 TV, 냉장고 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래서 물질재가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 없는 제품은 거의 없다. 따라서 지금의 MZ세대는 물건을 사는 데 큰 기쁨을 못 느낀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경험을 사는 데 열광하며 여기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쓴다.

기술에서 경험으로

필자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련 컨설팅이나 강의에서 가장 강조하는 대목은 “DT의 핵심은 ‘Digital’이 아니라 ‘Transformation’이다”라는 대목이다. ‘Digital’을 활용하여 ‘고객경험으로 ‘Transformation’하라는 말이다. 기업들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성공이 단순히 첨단 디지털 기술의 도입 자체가 아니라 고객 경험의 혁신(Experience Innvation)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핵심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이들 기술 자체를 DT로 생각하여 처음에는 신기술의 기대치가 처음에는 급상승하다가, 얼마 후 적절한 사용성을 검증받지 못하게 되면 기대치가 뚝 떨어지는 현상을 보게 된다.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는 기술인가? 기존에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뛰어넘는 고객가치를 줄 수 있는 기술인가? 만약 신기술이 여기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면 시장과 기업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때 검증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고객경험이다. 그런데 ‘왜 이런 핵심기술을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고민하고 있는 기업의 리더는 많지 않다.

스타벅스는 일찍부터 고객의 경험을 혁신하기 위해 최신 IT 기술을 빠르게 도입했다. 스타벅스의 최고기술책임자인 게리 마틴 플리킨저(Gerri Martin Flickinger)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기술이 스타벅스에 구현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는다. 어떻게 스타벅스에 구현되는지가 중요하다.” 사실 스타벅스는 기술을 혁신하지 않았다. 기술을 통해 고객경험을 혁신한 것이다. 이것이 스타벅스가 디지털 전환으로 기회를 잡은 핵심성공 요인이다.

카페는 전형적인 오프라인 비즈니스이다. 많은 고객이 공간에 찾아와서 음료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그런데 ‘제3의 공간’을 콘셉트로 내세운 스타벅스가 오프라인 공간의 혁신보다 디지털 전환에 핵심역량을 집중했다는 것은 공간을 버린 것도, 비즈니스 콘셉트를 바꾼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디지털을 활용하여 공간과 오프라인 경험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로봇이 바리스타를 대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바리스타가 좀 더 자유로워지면서 음료를 만드는 데 더 능력을 발휘하고, 고객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을 표방합니다”라고 플리킨저는 부연해서 설명하고 있다. 디지털의 목적이 고객경험의 혁신에 있음을 강조한 대목이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AR/VR 등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도입하는 데 참으로 바빴다. 그러나 이제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아 변화의 패러다임을 ‘기술’에서 ‘경험’으로 옮겨가야 한다.

리마커블한 경험이어야 한다

치열해져 가는 경쟁환경 속에서 고객이 접하는 상품과 브랜드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넘쳐나는 소비자 정보 속에서 고객충성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스타벅스처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고객경험 CX(Customer experience)를 향상시킴으로써 고객충성도를 높이려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의 기본 스펙은 물론이고, 세심한 서비스와 신선한 이벤트로 고객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남녀 간의 사랑이든 기업의 서비스든 평범하고 똑같은 것은 지루하다. 우리는 생리적으로 독특한 것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것은 무시하도록 만들어졌다. 마케팅 구루인 세스고딘(Seth Godin)은 이를 ‘보라빛 소’라고 부른다. 보랏빛 소처럼 리마커블해야 한 명의 고객에서 수천 명의 잠재고객으로 퍼져 나간다. 광고는 “언급할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기업들이 내는 세금”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잘 짜여진 연출과 리마커블 서비스는 그러한 세금을 내지 않게 해준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소문과 언론을 타고 광고를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모든 서비스와 마케팅은 고객경험의 향상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고객 경험 향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고객 경험 향상의 핵심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입소문을 내거나 SNS에 퍼나르는 것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특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브랜드를 만나는 가장 흔한 방법은 검색이다. 그런데 관습적이고 평범한 브랜드나 서비스는 수많은 상품 중에서 우리 눈에 띄기도 어렵고, 한두 번 띄었더라도 뇌에 기억되지도 않는다. ‘기억한다(Recall)’는 것은 ‘알고있다(Recognition)’와는 엄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제품을 선택하는 일반 브랜드라면 꼭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다. ‘어디서 들어본 브랜드다’ 정도만 되어도 고려대상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선택되는 브랜드들은 ‘들어봤다’ 정도로는 곤란하다. 반드시 머릿속에 기억되어서 검색을 하고 앱을 다운 받을 수 있는 단계로 가야 되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회상용이성(availability)’이라고 한다. 회상용이성이란 얼마나 쉽고, 신속하고, 생생하게 회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사건의 확률을 판단하는 휴리스틱이다. 제품의 기능이나 서비스가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에 더 좋은 제품으로 착각되어 선택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특출하고 의외성이 있는 경험이어야 한다. 뇌를 강력하게 자극하지 못하는 평범한 서비스는 금방 잊혀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기업과 제공하지 못하는 기업으로 양분될 것이다. 생존하느냐, 아니면 퇴출당하느냐의 기로가 고객경험에 달려있는 것이다. 디지털을 통한 리마커블한 고객경험을 완벽하게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생존전략이다.

장정빈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jjb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