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의 깊은 사랑_ 홍진호 | 한재원

 

 

 

 

한 여인을 흠모하게 된 남자가 있다면 꼭 첼리스트 홍진호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흥미로워 보이고, 많은 이들에게 첼로를 소개하고 싶어 하는 눈빛. 엄밀히 말하면 그는 첼로의 소리와 사랑에 빠졌다.

 

크로스오버 밴드 ‘호피폴라’의 유튜브 공연실황 영상을 보다 한두 개로 만족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전자피아노, 일렉기타 등의 대중악기와 어우러지는 첼로가 어찌나 이색적인지 동영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중 제일 독특한 무대는 아비치의 <Wake me Up>이다. EDM 장르를 첼로가 메인파트로 소화하는 것도 놀라운데 악기를 360도로 돌리는 퍼포먼스를 곁들이고 기타처럼 현을 튕기는 첼리스트의 연주는 지금껏 직간접적으로 봐온 연주 중 첫 손에 꼽을만하다.

 

파격적인 주법으로 놀라움을 안겨주는 첼리스트 홍진호(34)의 연주에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다. 인터뷰 때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신기하다’였다. 첼로 음색이 대중악기와 잘 어울린다는 사실도, 클래식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크로스오버 클래식 장르가 시도되는 경향도 그에게는 놀랍고 신기한 공부거리였다. 심지어 첼로를 돌리는 퍼포먼스를 흥미로워하는 관객의 반응도 신기했다고 회상하는 그의 눈빛은 호기심 가득한 소년처럼 초롱초롱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새로워하는 면모로 미루어 봐서는 새내기 첼리스트로 보일지 모르나 그는 12년여 동안 정통 클래식 무대에 서온 베테랑 첼리스트다. 서울대학교 기악과를 졸업하고 독일 뷔어츠부르크 음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는 동안 쌓아온 그의 이력도 매우 화려하다. 이탈리아 파도바, 프랑스 보르도, 스위스 베르가모 등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며 클래식계의 수재로 주목 받은 그는 원숙한 연주력으로 대중음악 밴드의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슈퍼밴드>에 나간 건 다른 장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클래식에서는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 절제미를 중시하는데 실용음악 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감정에 충실한 연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았죠. 프로그램에서 결성한 호피폴라가 제게 새로운 음악 인생까지 열어주었으니 이번 도전은 정말 특별해요.”

 

 

 

 


 

경계를 두지 않는 첼리스트

 

홍진호는 연주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오케스트라 대신 밴드악기와 호흡을 맞추는 모험심 강한 첼리스트다. 그의 흥미로운 도전은 클래식 무대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최근 브람스 소나타로만 구성했던 독주회도 남다른 결단력이 필요한 공연이었다. 보통 클래식 연주자들은 자칫 지루해질 것을 우려해 한 음악가의 곡들만 연주하는 방식을 피하지만 그는 다르다. 1시간 30여분 동안 연주한 브람스 소나타는 클래식계의 관례가 무색하게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그도 그럴 것이 홍진호의 연주는 질풍노도의 시간을 묘사하듯 장중한 음색으로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오는가 하면 시냇물 같은 발랄한 소리로 귀를 즐겁게 하며 따분할 틈을 주지 않는다.

 

“첼로 소리가 주는 감동이 얼마나 큰지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관객은 호피폴라에서 들려주는 대중음악을 기대할 텐데 클래식을 들려주면 당황해할 거란 주변의 우려도 많았지만 제 뜻대로 밀어붙였죠. 대신 연주에 생생한 감정을 불어넣기 위해 브람스의 생애를 철저히 공부한 다음 나름대로 한 편의 스토리를 만들어 떠올리며 연주했어요.”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첼리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요즘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첼리스트로 사랑받고 있다. 여느 정통 클래식 첼리스트들과 다른 행보를 걷는 그의 모험심은 첼로 소리에 대한 깊은 애착심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이력이나 연주철학보다 첼로 음색에 대한 감상을 말하는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는 그. 열두 살에 어머니가 들려준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에 온통 빼앗긴 마음을 지금껏 거두지 못한 그는 뛰어난 첼로연주자인 동시에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감상자이기도 하다. 스스로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고 몸을 낮추지만 그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첼로 음색에 누구보다 뜨겁게 반응하는 가슴을 보면 알 수 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LP음반으로 첼로 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짐승의 울음처럼 들릴 만큼 가슴 깊이 파고드는 울림이 정말 강했죠. 몸에 전율이 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어요. 음색이 어찌나 멋지던지 그 소리를 평생 갖고 싶다고까지 생각했어요. 한 달간 식음을 전폐하며 어머니한테 첼로 사달라고 떼를 써서 처음 첼로를 갖게 되었죠.”

 

보통 네다섯 살부터 악기를 배우는 첼로연주자들에 비해 열두 살의 나이로 매우 늦게 음악을 시작했지만 그만큼 악착같이 연습했다. 서너 시간만 자면서 연습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엉덩이가 짓물러 피가 난 적도 있을 만큼 잠시도 활을 놓지 않는 노력파였다. 그럼에도 그는 네 줄짜리 현악기 앞에서만큼은 상대가 고통을 줘도 마냥 좋은 순정남이 돼버린다. 연인이 생기면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지듯 연주력을 갈고 닦으며 첼로의 음색에 더 깊이 빠져들수록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바람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첼로 선율에 실려온 행복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공연을 다니다보면 콘트라베이스나 바이올린 소리로 오인하는 분들이 꽤 많았어요. 첼로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모르시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첼로와 친해질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차에 슈퍼밴드 출연자 모집 공고를 본 거죠. 클래식 연주자가 색다른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어요.”

 

지원 당시에는 밴드음악이 낯설 뿐더러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첼로 소리를 대중화시키겠다는 바람 하나로 그는 기꺼이 한 번도 서보지 않았던 미지의 무대로 나아갔다. 밴드 멤버로서 연주하는 동안 그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첼로를 제3의 보컬로 만드는 것. 지금도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 편곡에 열성을 다하고, 연주는 물론 작은 퍼포먼스 하나까지 맹연습을 하며 밴드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두 명의 보컬 다음으로 첼로가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관객에게 첼로 음색의 진가를 알릴 수 있다면 그에겐 그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무대를 직접 보는 것만큼 첼로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인할 확실한 방법은 없다. 첼로 음색에 심취해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첼로를 감싸 안은 팔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춤추듯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무아지경에 빠진 그의 행복감이 오롯이 전해온다. 역시 음악으로 전해지는 감정은 보다 쉽게 전염되는 것일까? 밴드, 클래식 무대 할 것 없이 그의 섬세한 연주는 누구든 첼로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첼로로 감동을 줄 수만 있다면 어떤 도전도 마다하지 않으려 해요. 그건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새로운 감정과 지식을 얻는 순간이 정말 즐겁거든요. 관객은 결코 아둔하지 않아요. 음악에서 연주자의 행복이 느껴질수록 깊은 감동을 받죠. 제가 행복해지는 것이 첼로 본연의 음색을 제대로 전하는 길이라 믿어요.”

 

무대가 끝나고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는 ‘첼로의 멋진 소리를 온전히 전했다’는 안도감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공연에 꼭 한번 오라는 그의 끝인사에서 첼로를 향한 각별한 사랑이 느껴져 자연스레 그의 공연일정을 검색하게 되었다.

 

글 한재원 기자 사진 김수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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