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르고, 지지고, 볶아온’ 팔십 세월 | 김윤미


 

 

동네에서 알아주는 미용사였던 김옥향(77) 할머니의 손에는 항상 가위가 들려 있었다. 작은 미용실에는 서걱서걱하는 가위질 소리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그런 그녀가 잠시 가위를 내려놓으면 끼니 때가 된 것이었다. 가족을 먹이기 위해 가위 대신 식칼, 뒤집개, 주걱 등 조리도구를 손에 쥐고 어김없이 자르고, 지지고, 볶았다. 미용실에서는 머리칼을, 부엌에서는 식재료를 자르고, 지지고, 볶아온 세월이었다.


강릉시 교동 임영경로당에는 매일같이 진수성찬이 펼쳐진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르신들을 위해 정성껏 상을 차리는 김옥향 할머니 덕분이다. 그녀의 분주한 손길로 오늘도 어김없이 경로당에는 근사한 점심 식사가 차려진다. 오늘의 메뉴는 곤드레오징어순대와 돼지껍데기볶음이다. “얼마 전에 강원도 경로당광역지역센터에서 진행하는 ‘경로당할머니손맛찾기’ 유튜브영상을 찍었는데 그때도 곤드레오징어순대와 돼지껍데기볶음을 만들었어요. 곤드레는 철분이 많고, 오징어에 들어있는 타우린은 피로회복에 좋아요. 돼지껍데기는 콜라겐 성분이 있어 피부에 좋대요.” 영양까지 고려해 음식을 만든다는 김옥향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어르신이 맞장구를 친다. “우리 봐봐요. 구십이 넘었는데 주름도 없고 탱탱하죠? 돼지껍데기볶음 덕분이에요.”


돼지껍데기를 삶아서 고추장, 참기름 등 각종 양념에 버무린 돼지껍데기볶음은 이곳 어르신들이 특히 좋아하는 별미다. 엄나무, 벌나무 조각을 육수에 넣어 돼지 냄새를 제거하고, 1시간 이상 푹 끓여내 찬물에 씻어 잘게 썰면 이가 시원찮은 어르신들도 먹기 좋게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해져 자주 상에 올리는 음식이다. 돼지껍데기볶음은 그녀의 유년시절 추억이 서린 음식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 돼지고기를 사러가면 단골가게 아저씨가 껍데기를 공짜로 주셨어요. 먹을 게 없던 시절이니 요긴하게 잘 먹었지요.” 이제 먹을 게 차고 넘치는 풍족한 시절이지만 몸에 좋다는 말에 자주 껍데기를 무쳐 반찬으로 만들어낸다. 곤드레오징어순대 또한 심혈을 기울인 메뉴다. 건강을 위해서 철분 함유량이 높은 곤드레를 아낌없이 넣었다.


 

 


마치 식품영양학과 교수처럼 음식마다 영양소를 꼼꼼히 따지게 된 건 간암 투병 중이던 남편의 병구완을 위해서였다. “먹어야 기력이 생길 텐데 입맛이 없으니 먹는 게 시원찮았지요. 그래서 반찬을 열두 가지나 만들었어요. 이건 뭘까? 궁금해서라도 한번 먹어볼 거 아니에요. 그렇게 한입씩만 먹어도 양이 꽤 되니까요.”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그녀의 정성에 결국 암도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암도 물러나게 한 그녀의 억척스러움은 스무 살 처녀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용사가 입는 하얀 가운이 멋져 보인 그녀는 고향인 제천 ‘제일학원’에서 미용기술을 배웠다. 그리고는 단돈 6천 원을 들고 혈혈단신 서울로 향했다. 당시 여관 하루 숙박비가 250원이었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60만 원쯤 되는 돈이었다. 성공하기 전까지 집에는 일절 연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미용실 쪽방에서 먹고 자며 기술을 익혔다. 그 시간이 자그마치 5년이었다. 정식 미용사로 자리를 잡은 뒤 그녀는 바바리코트 입고 뾰족구두 신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가 대문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놀라 자빠졌다. 5년 동안 소식 없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막내딸의 귀신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가 넌 모래밭에 파묻어도 살아날 거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같이 학원에서 기술 배웠던 아이는 여전히 시장 미용실에서 보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제천에 있었으면 나도 똑같았겠죠.”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사람들은 그녀를 달리 보았다. 세 살 많은 남편과 결혼을 하고 시댁이 있던 태백에 미용실을 차렸는데 그야말로 돈을 쓸어 모았다. 목돈이 생기니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약간의 이자를 받으며 살림도 더욱 피었다. 그런데 기어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계주 한 명이 도망가면서 동네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돈을 빌려준 사람 대부분 곗돈을 날려 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 마당이라 그녀 또한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빈손으로 태백을 떠나 강릉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간 밤낮없이 고생하며 번 돈을 하루아침에 날렸다는 상실감에 힘겨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돈이 없는 건 창피한 게 아니야. 다만 아쉬울 뿐이지”라는 고3 딸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더욱 억척스러워졌다. 그날부터 큰아이 이름을 딴 ‘김효정 미용실’에는 가위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가족의 식사를 챙기고 사남매의 도시락을 날마다 여섯 개씩 쌌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부족한 시간을 붙잡아 매두고 싶었지만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고 10대의 아이들은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장학사, 교수, 호텔 관리인이 되었다.


자식들 모두 남부럽지 않게 자랐으니 바랄 바 없는 노년을 보내는 그녀는 가끔씩 ‘남편이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암까지 이겨냈건만 남편은 3년 전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뇌졸중으로 눈을 감았다. 홀로 된 후 시간여유가 많아졌을 법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매일같이 경로당에 나가 어르신들을 위해 식사를 차리고, 금요일마다 시장에 나가 미용봉사를 펼친다. 이제는 내 가족이 아니라 남을 위해 시간을 쓰게 된 것이다. “돈도 후회 없이 만져봤고 바라는 거 없어요. 다만 몸이 따라주는 한 계속 봉사하고 싶어요. 남을 돕는 게 나도 즐겁게 만들어주네요.” 남을 돕는 즐거움에 김옥향 할머니의 삶은 여전히 푸른 동해바다처럼 활력이 넘친다.

 

 


글 김윤미 기자 사진 김수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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